밴드 오브 브라더스
01. “죽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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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더는 이렇게 기억했다. “그들은 일류였다. 우리에게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으며, 그들의 행동은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기적과도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믿음으로 대했다. 특히 윈터스 그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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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이 말했다. 윈터스는 친절했으며 진정으로 부하들과 훈련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수줍음이 많아 다툴 때에도 ‘씨X’이란 말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누군가 ‘중위님, 저녁에 데이트 약속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얼굴이 심하게 붉어졌다.” 대대 참모장교로 보직을 옮긴 매터슨은 가장 군인정신이 투철한 청년장교였다. 또한 헤스터는 아버지처럼 엄격했으며 닉슨은 멋있었다. 윈터스는 이러한 점이 없었다. 유머감각이 있거나 고집이 세지도 않았지만 항상 남을 위해 행동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따르고 존경했다. 따라서 윈터스가 실망하는 행동은 하기를 싫어했다. 대원들은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다.
02. 공수훈련
03. 폭풍전야
-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웹스터는 예외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어머니, 저는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공수부대에 자원했습니다. 저는 전투에 참가할 것입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전투 중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죽는다는 것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런 희생을 통해 전쟁에 승리한다면 값어치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04. “히틀러, 우리가 간다!“
05. 가장 긴 하루
- 윈터스는 자기 전에 일기를 썼다. ‘나는 무릎을 꿇고, 오늘 내가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내일도 나와 함께 하시길 간청했다.’ 그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만일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어느 고요한 외진 농장을 찾아 평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라고.
06. 세 통의 전사통지서
07. 아이젠하워의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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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샤르뜨르 작전의 D-데이. 주간강하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원들은 모두 기상해 조용히 옷을 입었다. 아마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여러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간밤에 간이침대를 눈물로 적셨을 것이다. 분위기는 초연하고 침울했다. 아무도 돌격머리로 밀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보아라, 히틀러! 우리가 왔다!”하고 외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어머니, 지금 당장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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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대령이 격려연설을 했다. ”(…) 절대 네덜란드에서 양털방한모를 쓰고 다니지 마라. 테일러 장군이 노르망디에서 그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연대소속 병사 한 놈을 잡아 내가 혼쭐이 났으니까. 내가 또 경고를 들어야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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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스터의 기록이다. ‘싱크 대령의 연설을 듣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는 전투 중에도 사리분별력이 있었고, 현실적이며, 유머가 있었다. 하지만 테일러 장군은 그 반대였다. (…) 싱크 대령은 대원들이 싸우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전쟁 끝 무렵까지도 테일러 장군은 대원들이 독일군 죽이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싱크 대령을 더 좋아했다.‘
08. 지옥의 고속도로
09. 서부전선 이상없다
- 대원들은 텅 빈 마을에서 무제한적인 약탈을 했는데 이는 빨리 수습되었다. 웹스터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민들은 독일군과 소련군만이 장롱과 옷장, 덝장 등을 가져간다는 오해를 하고 있지만 내가 아는 미군 또한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손목시계와 벽시계, 보석, 가구는 물론 술 같은 경우는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이미 영국군이 한탕하고 남은 것들이었다.
10. 파리의 하룻밤
11. 엿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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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병은 중대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고, 감사해야 할 대원들이다. 그들의 무기는 응급처치약이다. 위치는 따로 없어 부상당한 대원들이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 달려간다. 폴리 중위는 특히 유진 로에게 감사를 표했다. “로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든 있었고 언제 갔는지 항상 부상병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용감성과 부상자들에 대한 영웅적인 의료행위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강력한 포격 후에 행한 그의 뛰어난 공적에 대해 은성훈장을 추천했지만 거부당했다. 내가 적당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이크 중위가 허락하지 않아서인지, 혹은 그가 너무 동떨어진 곳에서 임무를 수행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수많은 공격에도 평지와 숲을 누비고, 눈과 추위와 싸우며 훈장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위생병 유진 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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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스는 회상했다. “누군가 심한 총상을 입으면 그는 대개 즐거워했고 우리는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병원으로 후송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죽으면 그는 매우 행복한 표정이었다. 고통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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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장군도 복귀하여 전선을 시찰했는데 윈터스에 따르면 매우 기운차 보였다. 그가 떠나기 전에 한 지시는 ‘앞에 있는 숲 속을 잘 살펴라!’ 였다. 그가 워싱턴에 가 있는 동안 대원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윈터스는 인터뷰 중 테일러 장군에 관해 얘기했다. “어쨌든 테일러 장군이 워싱턴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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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포위되었다는 공포와 패배의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육체적인 고통과 추위와 식량부족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또한 항복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는데 그 원동력은 바로 용기와 끈끈한 전우애였다. 이를 중심으로 뭉친 대원들에게는 독일군의 파상공격도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12. 발지전투
13.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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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스가 주장했다. “그 전투를 겪은 대원들은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 모두 두려움을 알았다. 죽음이나 부상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헛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글렌 그레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참전한 수년간, 가장 두려웠고 아직도 남아있는 두려움은 그런 일들이 특별한 목적을 거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나 자주 전쟁일지에 썼는지 모른다. 나에게 도움이 되든 아니든 과연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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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스터는 (…) 부모가 중대에서 빼내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하버드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 그는 책을 좋아했고 독자이자 작가였다. 예민하고 분별력 있고 예리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려 깊고 교육을 잘 받았다. (…) 다른 사병들과 개인호 속에서 잠을 자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산골뜨기와 남부지역의 농부, 광부, 벌목공, 어부 등 대원 대부분과 친했다. 물론 대학 출신도 있고 대부분 경영이나 교육을 전공했다. 그는 편견 없이 어울렸다. 입대 이전의 직업이나 출신에 대해 신경 쓰지도 않았고 특별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류 속에서 전우를 사귀었으며 그들과 즐기며 함께 행동하고 느끼려 했다.
14. 제2관측소
- 전선에서는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 극심한 고통의 죽음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도는 현재만이 존재했다. 웹스터는 부모님께 이렇게 적었다. ‘삶은 이제 하루, 그리고 시간 단위로 인식됩니다.‘
15. 포효하는 독수리
16. 비우호정책
17. 히틀러의 샴페인
18. 종전
- 7월 중순, 종군잠수에 스트레스를 받던 웹스터를 제외하고 노르망디에 참전했던 전 대원이 제대했다. 싱크 대령은 그들에게 고별인사를 했다. “연대장으로서 멋진 대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연대의 모든 지휘관들은 여러분들의 귀국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열심히 복무했고, 용감히 싸웠으며, 따라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요, 전우였던 여러분이 떠나는 모습을 보니 섭섭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한 번 이상은 본인에게 질책을 받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규율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으며, 사적인 감정은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대통령 표창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고,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명예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있을 것입니다. 노르망디, 네덜란드, 바스또뉴, 그리고 독일에서 여러분들을 지켜주었던 바로 그 분이 마지막까지 여러분을 보호하실 겁입니다.”
19. 노병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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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군복무 시절의 긍정적인 경험인 결심, 꿈, 노력 덕분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조직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근무할 때나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는 자신감, 자제력, 복종심은 군생활을 통해 배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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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28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바위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졌다. 대공황을 겪었고, 역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싸웠으며, 전후재건에도 참여했다. 그들은 원호법의 지원금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았고,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갔다. 어떤 이는 부자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은 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 집을 짓고 직업에 충실하며, 가족을 부양하며 그토록 누리고자 했던 자유를 멋지게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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