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정이천의 역전)
정이천 (지은이), 심의용 (옮긴이), 글항아리
범례
각 효는 음효 아니면 양효다. 역에서 양효를 구라 하고 음효를 육이라 한다. 괘가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과 어떤 상황의 때를 상징한다면 효는 그 때에 처한 한 사람의 위치를 상징한다.
[1. 건괘 (999 999)]
[2. 곤괘 (666 666)]
[3. 혼돈 : 둔괘 (966 696)]
[4. 어리석음과 어린이 : 몽괘 (696 669)]
[5. 성장과 기다림 : 수괘 (999 696)]
[6. 다툼, 송사 : 송괘 (696 999)]
[7. 군중, 군사 : 사괘( 696 666)]
[8. 친밀한 보좌, 협력 : 비괘 (666 696)]
[9. 작은 것으로 길들임 : 소축괘 (999 699)]
[10. 예의 실천, 본분의 이행 : 이괘 (996 999)]
[11. 소통과 안정 : 태괘 (999 666)]
[12. 정체와 단절 : 비괘 (666 999)]
[13. 동지와의 연대 : 동인괘 (969 999)]
[14. 수많은 지지자, 풍족한 소유 : 대유괘 (999 969)]
- 존귀한 지위에 자리하면서도 유한 태도를 지니면 실로 군중들이 모이게 되고 또 마음을 텅 비우고 문명하며 큰 중도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위와 아래가 뜻을 함께하면서 호응하니, 풍족한 소유가 되는 것이다.
[15. 겸손 : 겸괘 (669 666)]
[16. 열광과 기쁨 : 예괘 (666 966)]
- 일의 기미를 보는 것은 신묘하다! 군자가 윗 사람과 교제하는 데에 아첨에 이르지 않고 아랫사람과 교제하는 데에 함부로 대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 것은 기미를 알기 때문이다. 기미를 알지 못하면, 과도함에 이르렀는데도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윗사람과 교제하는 데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 과도해지면 아첨이 되고, 아랫사람과 교제하는 데에 온화하고 쉽게 대하는 것이 과도해지면 함부로 대하여 모독이 된다.
[17. 뒤따름, 열광적인 추종 : 수괘 (966 996)]
-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어둠이 내리면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군자는 낮에는 쉬지 않고 스스로 힘쓰다가 어둠이 내리면 집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그 몸을 편안하게 하니, 모든 행동거지를 때에 따라 마땅함에 적합하게 한다. ‘예기’에 “군자는 낮에 집 안에 거하지 않고 밤에 집 밖에 있지 않는다”라 했으니, 때를 따르는 도다.
[18. 부패의 개혁 : 고괘 (699 669)]
[19. 다가감, 군림 : 임괘 (996 666)]
- 옛날부터 세상이 안정되게 다스려졌다고 해도, 오래도록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는 성대한 때에 경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대할 때에 경계할 줄을 몰라 편안하고 부유한 데에 길들여지면 교만과 사치가 생기고, 늘어지고 방자함을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재앙과 혼란을 잊어버리면 위기의 틈새가 움트게 되니, 그래서 점차적으로 혼란이 오는 줄을 모른다.
[20. 봄과 보임 : 관괘 (666 699)]
- ‘관’이란 일의 시작이니, 마음이 정성을 다하려고 하여, 매우 엄숙한 때다. 제사 음식을 올리고 난 후의 예법들이 번잡해지면, 마음이 산란하여 집중하는 마음이 처음 제사를 올리기 시작할 때보다도 못해진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그 법도를 올바르게 하여, 아래 백성이 우러러 보는 자가 되는 데 있어 마땅히 장중함과 엄숙함을 처음 제사를 올리기 시작할 때처럼 하고 정성스런 뜻이 조금이라도 흩어져서 마치 제사 음식을 올린 후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믿음과 정성을 다해 흠모하고, 우러러 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21. 형벌의 사용, 깨물어 합함 : 서합괘 (966 969)]
[22. 꾸밈, 장식 : 비괘 (969 669)]
[23. 깎임, 소멸 : 박괘 (666 669)]
- “군자가 자라남과 줄어듦, 가득 참과 텅 빔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군자는 자라나고 줄어들며 가득 차고 텅 비는 과정의 이치를 명심하고 그것에 따를 수 있으니, 그것이 곧 하늘의 운행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이치에는 줄어들어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번성하여 자라나는 경우도 있고, 가득 차는 경우도 있고, 텅 비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에 순행하면 길하고, 그것에 역행하면 흉하다. 군자가 때를 따라서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도록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바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24. 회복 : 복괘 (966 666)]
- 육이효는 음효이지만 중정에 처했고, 초구효과 가까이 친밀하게 지내면서 그 뜻이 양을 따르려고 하니, 인한 사람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수가 있어서, 회복함이 아름다운 자다. 회복이란 예로 돌아가는 것이니, 예로 돌아가면 인을 이룬다. 초구효 양의 회복은 인을 회복하는 것이다. 육이효는 초구효와 가깝게 지내며 자신을 낮추어 그를 본받고자 하니, 아름답고 길한 것이다.
[25. 진실무망 : 무망괘 (966 999)]
- 진실무망한 도로 행해나가면, 어떤 일에서든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 없다. 사물을 대하는 데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수양하면 자신의 몸이 바르게 되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처리하면 그 일 처리에 이치를 얻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이 감동하여 변화하게 되니, 어떤 일에서든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 없다.
[26. 큰 것으로 길들임 : 대축괘 (999 669)]
- 때가 흥성하고 쇠락하는 것, 형세가 강해지고 약해지는 것을 ‘역’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깊게 깨달아야 한다.
- 성인이라면 그것을 그치게 하는 도리를 알아서, 위엄과 형벌을 숭상하지 않고 정치와 교화를 닦아 농사짓고 누에고치 짓는 생업을 갖게 하고 염치의 도리를 알게 하여, 백성들에게 상을 주어도 백성들은 도둑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행을 제지하는 방도는 그 근본을 알고 그 요령을 터득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저들에게 형벌을 엄격하게 가하지 않고서도 정치가 여기에서 잘 수행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빨의 날카로움을 근심하되, 그 이빨을 억지로 제지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세와 형세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27. 키움, 배양 : 이괘 (966 669)]
- 군주로부터 이와 같은 전권을 얻고 이와 같은 막중한 책임을 받았는데 세상의 위험과 혼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군주가 위임하고 예우해주는 것에 걸맞은 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정성과 능력을 다하여 몸을 돌보거나 딴 생각을 품지 말되, 그러나 신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8. 큰 것의 과도함 : 대과괘 (699 996)]
- “만일 맨땅에 물건을 놓아도 좋은데, 띠를 사용하여 깔았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신중함이 지극한 것이다. 띠라는 것은 하찮은 물건이지만, 그것을 신중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이러한 벙법으로 신중하게 일을 진행해 가면 실수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 매우 비범한 공을 일으키고 매우 비범한 일을 세우는 일은, 강함과 유함이 중도를 얻어 타인에게 도움을 취해 스스로를 보좌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강직하고 강한 태도가 지나치면 사람들과 함께할 수가 없으니, 보통의 공도 홀로 세울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매우 비범한 일을 세울 수 있겠는가? 성인의 재능은 작은 일에서도 반드시 타인의 도움을 취하니, 세상의 큰 책임을 맡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29. 빠짐, 잇단 위험 : 감괘 (696 696)]
- 물이 거듭해서 이르는 것이 습감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덕행을 일정하게 지속하고, 가르치는 일을 반복해서 익힌다.
- 신하는 충심과 신뢰의 방도로 군주의 마음을 결속시킬 때에, 반드시 군주가 밝게 알고 있는 곳으로부터 먼저 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가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가려져 막힌 곳이 있고 쉽게 통하는 곳이 있다. 가려져 막힌 부분이 어두운 곳이고, 쉽게 통하는 부분이 밝게 알고 있는 곳이다. 당연히 그가 밝게 알고 있는 부분을 취하여 설명하고 이해시켜서 신뢰를 구하면 쉽기 때문에 “마음을 결속시키는 것을 창문을 통해서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위험하고 어려운 때에 처하더라도 결국에는 허물이 없을 수 있다.
- 단지 군주에게 간언하는 데에만 이러한 방도로 할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데에도 그러해야 한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장점을 먼저 취해야 하니, 그가 잘 하는 일은 그의 마음이 밝게 알고 있는 것이므로, 그 마음이 밝게 아는 것으로부터 이해시킨 뒤에 그 나머지 것을 같은 원리로 미루어 언급할 수 있다. 이것이 맹자가 “덕을 이루고 재주를 통달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30. 밝음, 붙어 의존함 : 이괘 (969 969)]
- 구삼효는 하체의 끝에 자리했다. 이것은 이전의 밝음이 거의 다해서 뒤의 밝음이 그것을 이으려고 하는 때이니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시작을 이어가는 것이고, 때가 변혁하는 것이므로 기울어진 해가 하늘에 걸려 있는 것으로 상징했다. 해가 중천에서 아래로 기울 때의 밝음이니, 기울어진 것은 일몰의 때다. 이치로 말하자면 성대하면 반드시 쇠락하고, 시작하면 반드시 끝나는 것이 상도다. 이치를 통달한 자는 이러한 이치에 순종하여 즐거워한다.
- 질그릇을 치면서 노래하는 것은 그 상도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할 수 없다면 몰락의 죽음을 슬퍼하고 근심하게 되니, 결국 흉하다. 여든이 넘은 고령자를 뜻하는 ‘대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삶을 마칠 때 이치에 통달한 자는 그 상리를 알아 천명을 즐거워할 뿐이니, 상도를 만났으면 모두 즐거워하기를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하듯 한다.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 자는 항상 죽음의 비애를 두려워하니 이는 곧 늙은이의 서글픔으로, 흉함이 된다. 이것이 생사에 대처하는 도리다.
- 해가 기울어졌으니, 그 밝은 빛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현명한 자는 그러한 이치를 알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여 일을 잇게 하고 자신은 물러나 몸을 쉬게 하여 상도에 마음을 안정시킨다. 처신하는 바가 모두 이치에 순종하니, 어떻게 흉할 수가 있겠는가?
[31. 감응, 자극과 반응 : 함괘 (669 996)]
-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서로 감응하는 도리는 그 이로움이 정도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정도로 감응하지 않으면, 사악함에 빠진다. 예를 들어 남편과 아내가 과도하고 요사스럽게 감응하고, 군주와 신하는 아첨으로 기뻐하면서 감응하며, 위와 아래는 거짓과 편벽됨으로 감응하니, 서로 감응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하다.
[32. 지속적인 항상성, 상도 : 항괘 (699 966)]
- 세상의 이치 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움직이면 끝마쳐서 다시 시작하니, 곧 오래 지속하면서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유다. 천지가 낳은 것 가운데 산악처럼 견고하고 두터운 것일지라도 변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항구성이란 한 가지로 고정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 한 가지로 고정되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오직 때와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고 바꾸는 것이 곧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도이다.
- 후회를 없앨 수 있는 이유는 중도를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니, 사람이 중도를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다면 어찌 후회를 없앨 뿐이겠는가? 그것은 덕의 훌륭함이다.
[33. 은둔, 물러남 : 돈괘 (669 999)]
- 소인의 도가 자라날 때 군자는 물러나는 편이 오히려 도가 형통할 수 있다. 군자가 물러나 숨음으로 자신의 도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돈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소인을 멀리하되, 증오하지 않고 엄숙한 태도를 취한다.
- 군자는 좋아하는 것이 있더라도 은둔하여 마땅한 의리를 잃지 않고, 소인은 그 사사로운 의도를 이기지 못해서 좋지 못한 것에 이른다.
[34. 강함의 자라남, 큰 것의 강성함 : 대장괘 (999 966)]
[35. 나아감, 출사 : 진괘 (666 969)]
-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면 마땅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스로 신념을 지키며, 조용히 조급해하지 않고 관대하며 여유롭게 행동하여 윗사람의 신임을 구하는 데 급급하지 않이야 한다. 윗사람의 신임을 구하려는 마음만 간절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서 고수하는 신념을 잃거나, 얼굴에 원한과 노기를 띠고서 마땅한 의리를 해치게 되니, 모두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유로우면 허물이 없으니, 군자가 진퇴에 대처하는 도리다.
- 큰 복을 받는 것은 중정의 도로 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중정의 도를 지킬 수 있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 반드시 형통하다.
[36. 손상된 밝은 빛, 어둠에 감춰진 빛 : 명이괘 (969 666)]
- 어리석은 군주가 위에 있고 현명한 자들이 손상을 입는 때다.
- 폭군 주왕이 다스리던 암흑의 시기가 곧 밝은 빛이 손상되는 때인데, 문왕은 마음속에 문명한 덕을 지녔으면서 겉으로는 유순한 태도로 주왕을 섬겨서, 큰 환난을 무릅쓰고서도 안으로는 그의 현명한 성인됨을 잃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환난과 근심을 멀리할 수 있었다.
- (…) 이 밝게 살피는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살피는 것에 해를 입을 수 있고, 지나치게 살펴 모든 일을 시시콜콜 다 파헤치면 포용의 도량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군자는 밝은 빛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관찰하여, 군중을 대할 때 그의 밝게 살피는 능력을 극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어둠을 쓴다. 그런 연후에 타인을 용납하고 군중과 화합하여, 군중이 친하고 편안하게 여기니, 곧 어두운 어리석음을 쓰는 것이 바로 밝은 지혜가 된 것이다. (…) 옛날 성인이 면류관 앞에 술을 달고 문 앞을 가리개로 가린 것은 은미한 것까지 모두 밝게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 왼쪽 배로 들어간 것은 마음과 뜻을 얻었다는 것이다. 왼쪽 배로 들어간 것은 사악하고 편벽된 방식으로 군주의 마음에 들어가 그 마음과 뜻을 얻었다는 말이다.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군주가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37. 가족의 도리 : 가인괘 (969 699)]
-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 것이 가인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말을 할 때 실속이 있게 하고, 행할 때는 지속적인 일관성이 있게 한다. 가정을 바로잡는 근본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몸을 바르게 하는 도는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도 함부로 쉽게 하지 않아야 한다. 군자는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 모습을 관찰하여 모든 일이 안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말하는 데에 반드시 실질이 있게 하고 행하는 데에 반드시 지속적인 일관성이 있게 한다. ‘물’이란 일의 실속이고, ‘항’이란 지속적인 법도와 본받을 만한 법칙을 말한다. 덕과 공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말과 행위를 안에서 삼가고 조심했기 때문이다. 말을 신중하게 하고 행위를 수양하면, 몸이 바르게 되고 가정이 다스려질 것이다.
[38. 대립, 분열 : 규괘 (996 969)]
-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만나는 것은 허물을 피하기 위함이다. 대립과 분열의 때에는 사람의 감정이 괴리되고 어긋나니, 화합하기를 구하고, 또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근심한다. 하지만 화합을 구하려는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거부하고 절교한다면, 많은 사람이 군자와 원수가 되어 재앙과 허물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만나보아야 하니, 원한과 허물을 면하고 피하려는 것이다. 원한과 허물이 없다면, 화합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
- 대개 정도를 잃었다가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정리로 회귀하므로, 상구효가 육삼효에 대해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화합한다. “먼저 활줄을 당긴다”는 것은 처음에는 의심하고 미워하여 활을 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의심하는 자가 망령된 것이니, 망령된 것이 어찌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결국에는 반드시 정도로 회복한다. 육삼효는 실제로는 미워해야할 것이 없으므로 나중에는 활줄을 풀어놓고 쏘지 않으니, 대립이 극한에 이르러 회귀했기 때문에 육삼효와 다시 원수가 되지 않고 혼인하는 것이다.
- 비를 만나면 길한 것은 모든 의심이 없어진 것이다. 비라는 것은 음과 양이 화합한 것이다. 처음에는 대립하지만 결국에는 화합하므로 길하다. 화합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의심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대립했을 때에 의심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므로 모든 의심이라 했고, 대립이 극한에 이르러 화합하면, 모두 없어진 것이다.
[39. 고난, 시련, 역경 : 건괘 (669 696)]
- 고난의 때에는 평탄하고 감당하기 쉬운 곳에서 순리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이롭고, 위험한 곳에 멈추어 서는 것은 이롭지 않다. 순조롭고 감당하기 쉬운 곳에 처하면 고난을 해결할 수 있지만, 위험한 곳에 멈추어 있으면 고난이 더욱더 심해진다.
- 고난을 구제하는 자는 반드시 공명정대한 도로 행하고 그것을 지킴이 견고해야 하므로,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다. 고난에 대처하는 일은 반드시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고난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올바른 덕을 잃지 않으니, 그래서 길한 것이다. 만일 고난을 당하고서 공명정대한 도리를 견고하게 지키지 못하여 올바르지 못하고 비굴해지면, 구차하게 고난을 면하더라도 악한 덕이니, 마땅한 의리와 명을 아는 자는 그렇게 행하지 않는다.
- 군자는 고난의 모습을 관찰하여 자신을 돌이켜 덕을 수양한다. 군자가 어려움과 장애를 만나면 반드시 자신을 돌이켜서 반성하여 더욱더 스스로를 수양한다. 맹자는 “행하고 내가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하면,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구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고난과 위험을 만나면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여, 어떤 과실이 있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을 돌이키는 것이다.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고치고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면 더욱더 힘쓰니, 이것이 곧 스르로 자신의 덕을 수양하는 것이다. 군자는 덕을 수양하면서 때를 기다릴 뿐이다.
[40. 풀려남, 해방 : 해괘 (696 966)]
- 어떤 것도 끝까지 고난에 처할 리는 없으니, 고난이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고난에서 풀려난다.
- “진행해 나아갈 일이 있다면 일찍 하는 것이 길하다”는 말은 아직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빨리 처리하는 것이 길하다는 말이다.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일인데 최선을 다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일찍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그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다시 문제가 되는 일을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점차로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일찍 하는 것이 길하다”고 했다.
[41. 덜어냄, 손실, 희생 : 손괘 (996 669)]
- 덜어낸다는 것은 과도한 것을 덜어내어서 중도를 취하고, 헛된 것과 지엽적인 것을 덜어내서 근본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을 취하는 것이다. 성인은 차라리 검소한 것을 예의 근본으로 삼았다.
- 아래가 위를 증진시켜주는 경우는 마땅히 자신을 덜어내어 도움을 주되 스스로 그것을 공이라고 여기지 말고, 위에 있는 자를 증진시켜주는 일이 끝났다면 속히 떠나가서 그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아야 허물이 없다.
- “덜어내지 않는 것이 증진시키는 것이다”라는 것은 스스로 강직하게 올바름을 지키는 것을 잃지 않으면 윗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윗사람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만약 강직하게 올바름을 지키는 태도를 잃고 유순하게 상대를 기쁘게만 한다면 이는 단지 덜어내는 것이지 자신을 덜어내 윗사람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비록 사특한 마음은 없을지라도 오직 힘을 다해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만을 충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덜어내지 않는 것이 증진시키는 것이다”라는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육오효는 덜어내는 때에 중도로써 순종하여 존귀한 지위에 자리하며, 그 마음을 비워 강양한 자질의 구이효에 호응하니, 이는 군주가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덜어내서 아래 지위의 현자를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세상의 누가 자신을 덜어내 희생하여 스스로 최선을 다해 군주를 도와 증진시켜주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혹 증진시켜줄 일이 있으면, 열 명의 벗이 도와주는 것이다. ‘열 명’이란 많다는 말이다.
[42. 덧붙임, 증진, 유익함 : 익괘 (966 699)]
- 자신에게만 유익하려고 한다면, 그 해로움이 크다. 욕심이 심하면 어리석고 우매하게 되어 마땅한 의리를 망각하고, 극단적으로 이익을 구하게 되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강탈하여 원수가 된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하면 원망이 많다”고 했고 맹자는 “이익을 앞세우게 되면 모든 것을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성현의 깊은 경계다.
- <계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자신의 몸을 안정시킨 후에 행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한 후에 말하며,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안정시킨 후에 다른 것을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수양하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이룬다. 위태로우면서 행동하려고 하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이 호응하지 않고, 친밀한 교제를 안정시키지 않고서 다른 것을 구하려고 하면 백성은 주려고 하지 않는다. 백성이 함께하지 않으면 손상을 입히려는 자가 모여들 것이다. <역>에서 말하기를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고, 어떤 이는 공격한다. 마음을 세우는 데에 욕심을 지속시키지 말아야 하니, 흉하다’고 했다.” 군자는 말하고 행동하며 주고 구하는 데에 모두 그 공장한 도리로써 해야 완전히 선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손상을 입어 흉하게 된다.
[43. 과감한 척결, 결단 : 쾌괘 (999 996)]
[44. 만남 : 구괘 (699 999)]
[45. 함께 모임, 집회 : 췌괘 (666 996)]
- 세상 사람을 함께 모으려면 반드시 대인을 얻어 다스려야만 한다. 사람이 모이면 혼란하고, 사물들이 모이면 다투며, 일들이 모이면 문란해지니, 대인이 다스리지 않으면 모임 자체가 혼란과 다툼에 빠려 버린다. 함께 모이는 데에 정도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 구차하게 화합하고 재물이 모이는 데에 부정하게 들어오니, 어찌 형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 세상 사람이 함께 모이는 것은 풍성하고 넉넉한 때이니, 그 씀씀이도 마땅히 그 때에 걸맞아야만 하므로 “큰 희생을 쓰는 것이 길하다.” (…) 모든 씀씀이가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함께 모이는 때에 재물을 넉넉하게 교류한다면 풍성하고 부유한 길함을 누릴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 부유함과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넉넉한 때인데도 재물을 야박하게 교류한다면 이는 그 풍성한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향유하지 못하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함께하지 아니해서 후회와 인색함이 생길 것이다.
- 소인이 처신하는 것은 항상 그 마땅함을 잃으니, 탐욕을 부리고 욕심을 따라 스스로 편안한 곳을 선택할 수가 없어서, 곤궁한 지경에 이르면 엎어지고 자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상육효가 눈물콧물을 흘리는 것은 위의 자리에 처한 것이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거처하는 바를 신중하게 해서 마땅한 의리가 아니면 자리하지 않고, 불행하게도 위험과 곤궁이 있게 되면 태연하게 스스로 안정을 이루어, 마음에 얽매이지 않도록 한다.
[46. 상승 : 승괘 (699 666)]
- 나무가 땅속에서 생겨나, 성장하여 위로 상승하는 것이 승괘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 상승의 모습을 관찰하여 그 덕을 때에 따라서 수양하고, 작은 것을 누적하여 높고 거대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때에 순종하면 나아갈 수 있고, 거스르면 물러나게 된다. 만물의 나아감은 모두 때에 따르는 방도로써 이룬다. 선을 쌓지 않으면 명예를 이룰 수가 없다. 학업의 충실함과 도덕의 숭고함이 모두 축적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작은 것을 축적하는 것이 높고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이니, 이것이 상승의 뜻이다.
- 강한 사람이 유한 사람을 섬기고 양으로서 음을 따르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때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만 이치를 따르는 도는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사람에게 군림하거나 강한 사람으로서 약한 사람을 섬기는 것을 상황의 형세 때문에 억지로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종이 아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고제하는 데에 진실한 정성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또 정치적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 예로부터 강직하고 강한 신하가 유약한 군주를 섬길 때에, 속이고 꾸미지 않은 자가 없었다.
- 구삼효는 양강한 자질로 올바르고 또 공손하여 윗사람이 모두 순종하고 게다가 호응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러한 조건으로 정치권에 올라가면 마치 사람 없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므로, 누가 그것을 막겠는가?
- 옛날에 문왕이 기산 아래에 자리할 때, 위로는 천자에게 순응하여 군주가 훌륭한 도를 이루도록 했으며 아래로는 세상의 현자에게 순응하여 정치권에 올라오도록 했고, 자신은 유순하면서 이치에 순종하며 겸손하고 공손하게 그 지위의 직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극한 덕이 이와 같았으니, 주나라의 왕업은 이러한 덕을 사용했기 때문에 형통했던 것이다. 육사효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형통하여 길하고 또 허물이 없을 것이다.
- 현자들의 재능에 의지하여 책임을 맡기고 올바름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이렇게 상승하면 세상의 위대한 정치를 이룰 것이고 이는 그 뜻을 크게 얻은 것이다.
[47. 곤경 : 곤괘 (696 996)]
- 아래 감괘가 위험을 상징하고 위의 태괘가 기쁨을 상징하니, 위험에 처했으나 기뻐할 수 있다. 곤경과 궁핍과 어려움과 위험 가운데에 있지만 천명을 기뻐하고 마땅한 의리를 편안히 여겨,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때가 비록 곤경의 상황이지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한 의리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저절로 형통하니, 곤경에 처했으면서도 형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행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군자일 것이다!
- ‘제’, ‘사’, ‘향’은 넓게 말하면 서로 통할 수 있고, 나누어 말하면 ‘제’는 천신에게 하는 것이고, ‘사’는 지신에게 하는 것이고, ‘향’은 사람의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구오효는 군주의 지위라서 ‘제’라 말하고, 구이효는 아래 지위에 있으므로 ‘향’이라 말한 것이니, 각각 그 위치에 따라서 합당하게 사용했다.
[48. 우물, 덕의 원천 : 정괘 (699 696)]
- 우물은,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으니,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오고 가는 이가 모두 우물을 사용한다.
- 널리 베풀면서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은 매우 좋은 길함이다. 우물의 쓰임을 체득하여 널리 베풀면서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은 대인이 아니면 누가 가능하겠는가?
[49. 근본적인 변혁, 혁명 : 혁괘 (969 996)]
- 변혁은 하루가 지나야 믿게 되니, 크게 형통하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로우니, 후회가 없다.
- 변혁이란 옛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옛것을 변화시키면 사람들이 성급하게 믿을 수가 없으므로, 하루가 지난 후에야 사람의 마음이 믿고 따른다.
- 오래도록 지속하면 옛것을 없애버린 뜻을 얻으며, 변혁하여 움직인 후회가 없게 된다. 이것이 후회가 없는 것이다.
- 변혁이니, 물과 불이 서로 다투어 변화를 생성하며, 두 여자가 함께 살되 그 뜻을 서로 얻지 못하는 것이 변혁이다. (…) ‘서로 다투어 변화를 생성한다’는 말은 합당한 위치에 멈춘다는 말이다.
- 하루가 지나야 믿는 것은 변혁하여 믿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변혁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곧바로 믿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하루가 지난 후에야 믿게 된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개혁할 즈음에 마땅히 상세하게 알리고 거듭해서 명령하여, 하루가 지난 후에 사람들이 믿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믿지 않으면, 억지로 강행할지라도 효과를 이룰 수 없다. 선황의 정치 명령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이 처음에는 의심하는 자가 있었지만, 오래 지나면 반드시 믿는다. 결국에 사람들이 믿지 않고서 좋은 정치를 이룬 자는 역사적으로 있은 적이 없다.
- 이괘는 문명한 것을 상징하고, 태괘는 기뻐함을 상징한다. 문명하면 이치를 완전하게 파악하며 어떤 상황이든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고, 기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화답하며 순종한다. 변혁하되, 상황에 잠재된 이치를 모두 밝게 관찰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조화하여 따를 수 있다면, 크게 형통하여 올바름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변혁하여 지극히 합당함을 얻게 되므로, 후회가 없어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변혁하는 데에 그 합당한 도리를 얻지 못하면 도리어 폐해를 불러오므로, 변혁에는 후회의 도가 있다. 오직 지극히 합당한 변혁이라면 변혁 이전과 이후의 후회가 모두 없어진다.
- 변혁이란 일 가운데에서 아주 큰일이니, 반드시 그런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있고, 그럴 만한 지위가 있고, 그럴 만한 재능이 있어서, 정황을 깊이 살펴 사려하고 신중하게 움직인 후에야 후회가 없을 수 있다.
- 구삼효는 강양한 자질로 하체의 윗자리에 자리하고 또 불을 상징하는 이괘의 윗자리에 자리하여 중도를 얻지 못했으니, 변혁하는 데에 조급하게 행동하는 자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변혁하는 데에 조급하게 행동하니, 이런 방식으로 행하면 흉함이 있다. 그러나 아랫자리의 위에 자리하여 실로 응당 변혁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찌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굳게 올바름을 지키고 상황을 위태롭게 생각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으며 공론에 복종하여 따르면, 행하여 의심이 없을 수 있다.
- 오직 마땅히 신중함을 지극히 하여, 스스로의 강명한 능력만을 믿지 말고 공론을 살피고 고찰하여 세 번 모두 합치에 이른 뒤에 개혁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50. 가마솥, 안정 : 정괘 (699 969)]
- 가마솥의 용도는 사물을 변혁시키는 것이다. 날것을 변화시켜서 익힌 것으로 만들고, 딱딱한 것을 변화시켜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며, 물과 불은 함께 처할 수 없는 것인데 서로 합쳐서 작용하도록 만들어도 서로 해를 끼치지 않게 할 수 있다.
[51. 진동, 진율 : 진괘 (966 966)]
- 군자는 중첩된 우레가 위세 있게 진동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신중하게 신칙하고 스스로를 성찰한다. 군자가 하늘의 위세를 두려워하면 자신의 몸을 수양하며 바르게 하고, 자신의 과실을 사려하고, 허물하여 고친다. 우레의 진동만이 아니라 놀라고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는 모두 이와 같이 해야만 한다.
[52. 멈춤, 합당한 위치 : 간괘 (669 669)]
- 간은 멈춤이니, 그쳐야 할 때 그치고 가야할 때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에 그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가 밝게 드러난다.
- 성인이 세상을 순조롭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일을 만들고 법도를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각각 그 합당한 위치에 멈추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 군자는 멈추어 있는 모습을 관찰하여 자신이 멈춘 자리가 편안한지를 사려하고,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위치란 처신하는데에 합당한 본분이다. 모든 일은 각각 그 합당한 위치가 있어 그 함당한 위치를 얻으면 그쳐서 편안하다. 만약 마땅히 행해야 하는데도 멈추고 마땅히 신속하게 떠나야 하는데도 오래도록 머물러서, 어떤 경우는 과도하고 어떤 경우는 미치지 못하면 이것은 모두 합당한 위치에서 벗어난 것이니, 하물며 본분을 넘어서서 자신이 자리해야 할 곳이 아닌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 세상의 일은 오직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멈춤에 독실하여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자다. 상구효가 길한 것은 끝까지 그 본분을 두텁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3. 점진적인 진입 : 점괘 (669 699)]
- 사람이 나아가는 데에 욕심이 동하면 조급하여 점차적인 순서를 따르지 못하므로, 곤궁하게 된다. 점차적인 진입의 뜻에서는 안으로는 멈춰 안정을 이루고 겉으로는 공손하고 이치를 따르므로, 그 나아가고 행동하는데에 곤궁함이 없다.
- 안정을 구하는 방도는 오직 이치에 순종하고 겸손한 태도에 달려 있다. 그 의리가 이치에 순종하고 바르며 그 처신이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면, 어디에 처한들 안정되지 않겠는가?
[54. 시집가는 여자 : 귀매 (996 966)]
[55. 번영, 풍요 : 풍괘 (969 966)]
- 소유하고 있는 것이 넓고 다스리는 것이 많으면 마땅히 두루 공평하게 미칠 수 없음을 우려해야 한다. 마치 중천에 뜬 해의 성대한 밝은 빛처럼, 세상을 두루 공평하게 비추어 이르지 않는 것이 없는 듯이 한다면 근심이 없을 수 있다.
- 해가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니, 하늘과 땅의 성쇠도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귀신은 어떠하겠는가?
- 성인은 때에 따라 마땅하게 대처하고, 상황에 따라 이치를 따른다. 형세가 대등하면 서로를 낮추려 하지 않는 것이 일상적인 이치다. (…) 타인과 협력하는데 힘이 대등한 경우에는 자신을 낮추어 서로 구하고, 힘을 합쳐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만약 자신을 우선시하는 사사로운 이득을 마음에 품고 타인을 이용하려는 뜻이 있다면 환난이 이르게 되므로, 대등함이 과도하면 재앙이 있다고 했다. 대등한 관계인데 자신의 이득을 먼저 내세우면 이는 대등함이 과도한 것이다. 한편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협동할 수 없다.
[56. 유랑하는 나그네 : 여괘 (669 969)]
- 나그네로 처하는 도리는 유순하면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우선이다. 구삼효는 강하지만 중도를 이루지 못했고 또 하체의 윗자리와 간괘의 윗자리에 자리하여, 스스로 자만하는 모습이다. 방황하는 때에 과도하게 강하면서 스스로 자만하는 태도는 곤궁과 재앙을 자초하는 길이다.
- 타향을 유랑할 때에는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고 유연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데, 과도하게 강하게 굴면서 자만하면 자신에게 합당하고 안정된 위치를 잃게 된다.
[57. 공손한 순종 : 손괘 (699 699)]
- 사람이 과도하게 자신을 낮추고 공손한 것은 두려워 겁을 먹은 것이 아니면 아첨하여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니, 모두 정도가 아니다.
[58. 기쁨 : 태괘 (996 996)]
- 믿음이 안으로 충만하여, 소인과 가까이 관계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지키면서 절도를 잃지 않는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도 강중을 이룬 덕을 잃지 않으므로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 순임금 같은 성인일지라도 또한 말 잘하고 얼굴빛이 좋은 자를 두려워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쁘게 하는 말들이 사람들을 미혹시키는데 이는 쉽게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니, 두려워할 만한 것이 이와 같다.
[59. 흩어진 민심 : 환괘 (696 699)]
[60. 절제, 절도 : 절괘 (996 696)]
- 절제는 상황에 알맞게 적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과도하게 되면 고통스럽다. 절제하면서 고통에 이른다면 어찌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겠는가? 굳게 지켜서 오래 지속할 수 없으므로, 올바를 수 없는 것이다.
- 절제가 극한에 이르러 괴로우면 견고하게 오래 지속하여 지킬 수가 없으니, 그 도가 궁지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61. 진실한 믿음 : 중부괘 (996 699)]
- 믿음이 지극하면 사람들을 감동시켜 통하게 할 수 있다.
- 지극한 진실과 정성을 가진 사람끼리는 멀고 가까운 차이나 깊이 은거하고 있냐 아니냐의 차이가 없이 서로 통한다. 그래서 <계사전>에서는 “그 말이 선하면 천 리 밖에서도 호응하고 선하지 못하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긋난다”고 했다. 이는 지극한 진실이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지극한 진실과 정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통하게 하는 것은 도를 아는 사람만이 식별할 수 있다.
- 공자는 “자신의 신념을 믿기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사람을 해치게 된다”고 했으니, 고집스럽게 지키기만 하고 변통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62. 작은 것의 과도함 : 소과괘 (669 966)]
- 과도하게 행하되,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로운 것은 때에 따라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 마땅히 과도하게 행해야 할 때 과도하게 행하는 것은 과도함이 아니라 때의 마땅함이고, 이것이 곧 정도다.
[63. 성취, 완성 : 기제괘 (969 696)]
- 세상일은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나니, 하나로 고정된 이치는 없다. 모든 일이 성취된 끝에 나아가지 않고 그치지만, 항상 멈추어 있는 것은 없어서 쇠락과 혼란이 이르게 되니, 그 도가 궁색해져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쫒아간다”는 말은 어떤 것을 따르는 것이니, 어떤 것을 따르면 자신이 평소에 지키고 있던 것을 잃게 되므로, 쫓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도를 스스로 지키고서 잃지 않으면 7일 만에 당연히 다시 얻게 된다. 괘에는 여섯 자리가 있으니, 일곱 번째에 다시 변한다. “7일만에 얻는다”는 것은 때가 변하는 것을 말한다. 윗사람에게 등용되어 쓰이지 못하지만 중정의 도는 끝내 없어질 이치가 없으니, 지금 행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때에 반드시 행해질 것이다. 성인이 권면하고 경계한 것이 매우 깊다.
- 종일토록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항상 환난이 이르지 않을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성취했을 때에는 마땅히 두려워하고 신중하기를 이와 같이 해야만 한다.
- 성대한 제사가 검소한 제사만 못한 것은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육이효와 구오효는 모두 진실한 믿음과 중정의 덕을 가지고 있지만, 육이효는 ‘모든 것을 성취한 때’를 상징하는 기제괘의 아래 위치에 있어서 아직 나아갈 곳이 있으므로, 복을 받는다. 구오효는 기제괘의 끝에 자리하여 나아갈 곳이 없으니, 지극한 진실과 중정의 덕으로 지키면 뒤집히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뿐이다. 이치상으로 극한에 이르렀는데도 끝까지 뒤집히지 않은 것은 없다. 극한에 이르렀다면 잘 처신하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으므로, 육오효의 <상전>에서는 오직 그 때를 말한 것이다.
- 모든 것을 성취한 때의 극한은 실로 불안하고 위태롭다. (…) 모든 것을 성취한 때의 끝에 소인이 처하면, 그것이 파괴되어 무너지는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다.
[64. 미성취, 미완성 : 미제괘 (696 969)]
- 미완성의 때에 이를 해결하는 방도는 마땅히 지극히 신중하면 형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여우처럼 과감하면,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강을 건널 수 없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
- “미완성은 형통하다”는 것은 유한 것이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육오호가 존귀한 지위에 자리하고 강한 위치에 자리하면서 강한 사람과 호응하여, 유연한 중도를 얻었다. 강함과 유함이 중도를 얻었으니, 미완성의 때에 처하여 형통할 수 있다.
- 강함이 과도하면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게 되고 유순한 것이 부족하다.
- 미제괘의 경우에서는 극한에 이르렀다고 저절로 해결될 이치는 없다. 그러므로 단지 미완성의 끝에서는 지극한 진실과 정성으로 마땅한 의리와 천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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