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장소: Boulogne, Mont Saint-Michel, Saint-Malo, Deauville, Honfleur
총 운전: 17시간 40분
1일차: 5/22(금)
Eurotunnel을 처음 타 보는 여행이었다. 연휴 전 금요일이라 차가 생각보다 많이 막혀서 저녁도 못 먹고 급하게 갔다. 예약한 시간보다 40분 정도 늦게 기차에 차를 실었다.
Eurotunnel로 35분 정도, 내려서 다시 운전해서 30분 정도를 더 가서 첫 날 숙소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늦게 도착했는 데다가 프랑스는 영국보다 한 시간 빨라서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2일차: 5/23(토)
숙소는 Boulogne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 시가지(Ville Fortifiée) 안에 있는 호텔인데 1732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부티크 호텔로 잘 개조되어 있었다.
여긴 식당이 따로 없고 8시반이 되면 모든 방 앞에 아침을 가져다 줬다.
따로 Check-out이랄 것도 없이 키를 문에 꽂아 두고 나왔다. 어제 밤에 야간 조명을 받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성당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근처의 Boulogne Castle Museum에 갔다. 이름만 보고 Castle에 대한 지역 역사 박물관인 줄 알았는데 Castle에 있는 박물관이었고, 이집트 미이라, 알래스카 원주민 가면, 고대 그리스 도자기, 르네상스 이탈리아 미술 등 굉장히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다. 전시물 모두 수준이 높았는데 유명 박물관에 비해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한편, 어떻게 이 맥락 없는(?) 컬렉션을 프랑스의 조용한 마을에 모아 놓을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항구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수집된 물건들이 기증되어서라는데, 빼앗아 온 물건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애들은 지루해 하는 편인데 영상으로 되어 있는 작품 앞에서는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유튜브를 보고 자라서인가.)
박물관을 나와서 Boulogne Notre-Dame 성당으로 갔다. 7세기경 돛도 없고 사람도 없는 배가 성모상을 싣고 Boulogne 하구에 나타나서 이 교회로 성모상을 옮겼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이후 중세 내내 유명한 순례지가 됐다고 한다. 특히 십자군 전쟁 당시 이곳에 참배하지 않으면 큰 재앙을 당한다는 믿음이 왕들 사이에 퍼져서 프랑스 왕 14명과 영국 왕 5명이 직접 이 성당을 찾아 기도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괴된 건물을 건축에 문외한인 Haffreingue 신부가 40년 동안 직접 재건을 해서 1866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파이프가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컸는데 소리를 들어보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전설을 형상화한 조각이 군데군데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은 종교와 인종을 넘어서 어딘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성당을 나와서 구시가지를 걷다가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Boulogne를 떠나 Mont Saint-Michel로 이동했다. 4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서울-부산보다 먼 길인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주행/추월 규칙을 다들 잘 지키기 때문에 운전에 대한 피로감은 크지 않았다.
중간에 Tongue twister 같은 지명이 나와서 불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2일차 숙소는 바닥에서 냄새도 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방만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식당은 Mont Saint-Michel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View 뿐만 아니라 음식과 와인 모두 훌륭했다.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석양을 좀 더 즐기기 위해 셔틀 버스를 타고 Mont Saint-Michel 가까이로 갔다.
저녁 10시가 되니 해가 수평선/지평선 아래로 지려고 한다.
3일차: 5/24(일)
아침을 대충 먹고 Check-out을 했다. 짐을 차에 실어 놓고 Mont Saint-Michel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Mont Saint-Michel은 섬 위에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마을과 수도원이 있는 구조다. 수도원에는 성직자들이, 그 아래에는 귀족, 더 아래에는 상인, 그리고 성 밖에는 어부와 농민이 살았다고 한다. 수도원으로 쓰이다 15세기부터 감옥으로 쓰였고, 빅토르 위고가 펼친 보존 운동으로 감옥이 폐쇠된 이후 육지와의 연결 둑길이 만들어지고 현재와 같은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브랑슈의 주교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두 번이나 나와서 이 섬에 성소를 지으라고 했는데 주교가 무시하자 미카엘이 손가락으로 주교의 머리에 구멍을 냈고 그제야 주교가 성소 건설에 착수했다는 전설이 있다. 날이 뜨겁고 관광객이 많아서 전날 저녁 같은 여유로운 느낌은 없었다.
성가대의 노래 소리가 너무 공간을 잘 채워서 놀랬는데 알고 보니 스피커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돌로 만든 공간 치고 소리가 너무 부드러웠다. 높은 천장과 여러 모양의 기둥, 그리고 나무로 된 천장 때문일 것 같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던 곳. 수도원 생활은 종교라는 미명하에 저지른 일종의 폭력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후 감옥으로 사용될 때의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수도원이든 감옥이든 고립된 공간의 삶에서 이런 정원은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었을 것 같다. 심지어 백년전쟁 당시에는 약 30년간 포위되어 있었다고 하니.
Pietà
셔틀 버스를 타고 섬을 나와 차로 돌아와서 Saint-Malo로 이동했다.
(여기 셔틀 버스는 운전석이 앞뒤에 각각 있어서 차를 돌리지 않고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다.)
Saint-Malo는 왕의 허가를 받아 적국 선박을 공격하고 노획물의 일부를 바치는 Corsaire(코르세르)들의 본거지였던 도시로 구 시가지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밖으로는 해변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구 시가지 입구 근처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다들 주차장 입구에서 다른 차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그렇게 줄을 서서 1시간 만에 주차장에 들어갔다.
Saint-Malo가 있는 Brittany(브르타뉴) 지방은 Galette와 Crepe가 생겨난 지역이라고 한다. 밀이 잘 자라지 않는 기후인데 아시아에서 들어온 메밀이 잘 자라서 서민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고 거기에 햄, 치즈, 계란 등을 같이 먹으면서 Galette가 생겨났다고 한다. Crepe는 Galette 문화가 발전한 이후에 디저트 용으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 먹은 음식.
식사를 마치고 성벽을 올라가니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졌다. 영국에서 나설 때만 해도 조금 쌀쌀했는데 여기는 완전 여름이었다. 우리는 사전 조사 없이 여행을 다니다 보니 해변에서 놀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단 해변으로 내려갔고,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계속 놀겠다는 애들을 억지로 끌고 성벽을 한 바퀴 돌아 주차장으로 와서 다음 숙소가 있는 Tourgéville로 이동했다.
이 날 묵은 숙소는 Deauville 근교의 Tourgéville이라는 마을에 위치한 석조 저택을 호텔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집 주인이 직접 4개 객실만 운영한다.
4일차: 5/25(월)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Check-out(그냥 집주인한테 간다고 인사)하고 Deauville 해변으로 이동했다.
Deauville은 19세기 초까지는 목초지와 습지였는데 한 의사가 나폴레옹 3세의 이복형제의 지원을 받아 휴양지로 개발한 도시라고 한다. 코코 샤넬이 첫 번째 가게를 연 곳으로도 유명하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애들도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고 힘이 들어서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Honfleur로 이동했다.
(양양 서피비치?)
날씨도 많이 덥고 지친 상태라 Honfleur도 간단히 둘러만 보고 Eurotunnel 기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Busking하는 커플을 만났는데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였다. 더 듣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멀어지고 있어서 아쉽지만 끊었다. (뒤에 찾아보니 TAMISE 라는 제법 유명한 듀오로 유럽 전역을 돌면서 Busking을 하는 뮤지션들이었다. 6월 중순에 첫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Honfleur를 떠나 Eurotunnel 기차를 타러 이동했다. 다시 3시간 반이 걸리는 긴 거리였다.
Calais Eurotunnel Terminal은 무슨 문제인지 지연이 심했다. Terminal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차에서 2시간 반을 대기한 다음에 기차에 차를 실을 수 있었다.
영국쪽 Folkestone Terminal에 도착해서 다시 1시간 반을 더 운전해서 집에 도착했다. 시차로 한 시간을 벌었음에도 밤 11시 반이었다.
여행 전에는 보일러를 틀고 잤었기에 보일러 온도를 올리려고 스위치를 보니 실내 온도가 27도였다. 부랴부랴 풀다 만 이사짐에서 선풍기를 찾아서 틀었다.
Loading comments…